아아.
오늘도 역시 피곤함에 쩔어 잠에서 깨게 되는군.
나는 침대에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멍하나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로 벌써 일주일째인가 ㅡ 할일없이 시간만 때우는 건.
마실이라도 나갈까 하지만, 전에 13시간동안 마실을 나갔다 온 결과, 할일을 찾는게 훨씬 더 나을 것 같다.
오늘은 뭐라도 해야지 - 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거실로 갔더니.
"에휴, 이게 다 뭐람. 역시 남정네 사는 곳은 다 이모양이야."
라고, 뭔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내가 거실로 나가보자.
정체모를 어떤 소녀가 내 거실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으아악?!"
나도 모르게 질러버린 비명에 반응한듯, 소녀는 나를 보며.
"어랏, 일어나셨구나아 - 좋은 아침이에요!"
라고.
전혀 기분좋지 않은 인사를 건내었다.
"...야야야, 잠깐! 너 대체 뭐야?!"
"헤에에, 보면 몰라요? 소녀죠, 소.녀."
"아니아니!! 내가 물어보려는건, 너 대체 왜 여기 있냐고?!"
내가 이런 질문을 날리는 건.
이 소녀는 - 내가 아는 소녀이기 때문이다.
그래 - 전의 그 법정.
거기서 결정적 사진을 전해준 소녀 - 바로 이 소녀이다.
"당연히 들어왔으니까 있죠."
"어떻게 들어온 건데?!"
달음박질을 하며 대문쪽으로 급하게 가보았지만.
문에는 아무 흔적도 없었다.
기둥으로 문을 부순 흔적도 - 랄까 이건 오버지만.
아무튼지. 다시 거실로 돌아온 나는 따져 물을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들어온거야?!"
"저 창문으로 들어왔죠."
소녀가 가리키는 창문은 - 남쪽 베란다의 거대한 창문이었다.
"아니아니, 저런곳으로 들어왔다가는 당연히 걸어다니는 행인들에게 들킬게 뻔한거 아니냐고!"
"하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는걸요?"
"..아아, 그래그래. 아무튼지, 저 창문은 절대로 아니야. 이건 상식적으로 납득이이안가는 거라고!"
그렇게 다른 출입구(예를들면 쥐구멍이라든지)를 찾으러 가는 나를, 소녀가 불러세웠다.
"그보다 제가 여기 왜 왔는지는 안 물어보세요? 너무 매너가 없으시네요."
아아, 그러고보니 정말 중요한 질문이로군, 그거.
"...그래그래,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라서 잠시 머리가 안 돌아갔어."
정확하게 말하자면 숙취 때문이지만.
..랄까, 그만두자. 독자들이 나를 알코올 중독자로 볼까 겁난다.
"흐응- 나빠요, 이제야 물어보다니."
왠지 침울한 얼굴을 띄는 소녀가 멋대로 읽더 어제의 조간신문을 접어두었다.
"그래그래, 그래서 지금이라도 물어보잖아. 왜 왔는데?"
"저번처럼 사진이라도 건네러 온건 아니에요."
"그러면 무슨 얘기라도 하러 온거야?"
"단지 저는 눈바래기오스씨의 안부를 보러 온거라구요."
"이뵈, 나는 움직이는 섬에 사는 학원 학생이 아니라고, 내 이름은 눈바래기야."
"어이쿠야, 혀를 깨물었네요."
"혀를 깨물면 레기오스가 나오냐?"
"아니죠, 상상력은 눈바래기씨의 눈앞에서 무지개가 나타나게 할수도 있다구요."
"가상현실이냐!"
"물논."
"뭐라구요?"
"Perden?(뭐라구요?)"
"됬으니까 빨랑 페이퍼타올이나 뜯어가."
"아니죠, 용건이 있다니까요?"
"내 안부는 이미 봤잖아? 왜 안부를 보는건지도 모르지만."
"아 그게 말이죠, 저는 사실 눈바래기씨의 장인이신 백 회장님 밑에서 일하고 있다구요."
"난 결혼 안했어!"
한동안 이렇게 쓸모없는 대화가 흘러갔다.
"..뭐, 아무튼지. 이제 슬슬 본론에 들어갈 때가 된것 같네요."
"드디어 본론이냐."
"이렇게 계속 만담만 하다가는 스프링씨가 힘들어할테니까요."
"흐음, 그건 그러네."
누군지도 모르지만 왠지 동감이 간다.
시험기간인데도 불구하고 소설을 쓰고있는데 만담만 나오면 정말 힘들어하겠지.
독자가 웃겨서 웃는다면 작가는 원고지가 길어서 실소다.
"사실 저는 오늘, 눈바래기님을 데려가기 위해서 온거에요."
"엣?"
갑자기 황당한 이야기가 튀어나와버려 나도 모르게 혀짧은 소리를 내버렸다.
"그래요, 그러니 지금 당장 나갈 채비를 해야겠네요."
"아니, 잠깐만. 멋대로 들어와서 갑자기 또 나가자는건 뭐야?"
내가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전에 보내준 사진도 있으니까, 저를 좀 믿어주세요."
소녀도 그에 맞춰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그래, 딱히 할일도 없고 하니."
그렇게 단지 심심하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녀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제 이름은 아사카라고 해요."
"아사카?"
갑자기 그녀가 이름을 말해 순간 당황해 버렸다.
"왜요, 뭐 이상해요?"
"아니.. 순간 '아삭한' 으로 들렸어."
"제 중학교 별명을 여기서 공개하다닛!"
갑자기 아사카가 나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푸허어억?!"
아니, 아무리 봐도 내가 더 연상인데.
나, 연상같지 않은 거야?
"아무래도 하는 행동이 그래서 그렇게 보이는 거겠죠."
"내 생각을 읽지 마, 나는 멀쩡한 행동을 한다고."
"어이구야, 그런데 눈바씨의 오피스텔은 심하게 어질러져 있는데요?"
"원래 남자가 사는 곳은 다 그래."
"끔찍하네요 - 모든 남자들을 저주하겠어."
"아니, 스케일을 넓히지 마."
"됬습니다 - 전 이미 정했어요, 저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좋아요!"
"처음 나타난지 10분도 안되서 이상한 이미지를 만들지 마!"
"그렇습니다, 저는 동성애자였던 것입니다! - 커피숍이나 가야징."
"대체 왜 커피숍이 관련이 있는 건데."
그러는 사이.
나와 아사카는 -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왜 이런곳으로 오는 건데."
"왜요? 이건 그저 지하철일 뿐인데요."
"아니, 직장도 없어보이는 23살 청년하고, 학교에 가있어야 할 고등학생이 이런곳에서 어슬렁대고 있으면 정말 수상해 보인다고!"
"평범한 아버지와 딸인걸요, 뭐."
"죽어도 아니야!"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
나와 아사카는 지하철 의자에 앉아 있었다.
"후음, 이건 그야말로 '한산하다! 좋다!' 군요?"
"..뭐, 확실히 이시간은 다들 출근하거나 등교할 시간이니까."
참고로 나와 아사카가 탄 칸은 우리를 포함해 단 네명밖에 없었다.
"그러면 마음껏 이야기를 나눠보죠. 어차피 다들 잠이 들거나 이어폰을 끼고 있으니."
"이야기할 거리가 있나? 너가 왜 학교를 안가고 여기에 있는지라면 2시간 넘게 토론할 수도 있지만."
"진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눠봅시다."
"이거 나름 진지한 건데?"
"그렇다면 저는 묵비권을 행사할게요."
"불리한 증언이 적용될수도 있는데?"
"증언 반사!"
"슈퍼 증언!"
"으아아악!"
나는 강퇴를 쉽게 당하지 않아.
"...아, 근데 말이죠, 그사람은 어떻게 됬어요?"
"그 사람이라니?"
"아아, 그 안경을 쓰신 - 눈바씨의 파트너? 같은 느낌의 남자요."
"......"
아마도 제부 선배를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제로부엉이 씨라고 해, 그분은 내 선배이자 스승이야. 고마우신.. 분이지."
"후응, 그런건가."
나는 이야기하기 싫어 그냥 얼버부렸다.
아사카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곧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지금이 몇 시냐면.. 음."
아사카는 알았다는 듯 바라보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제부 씨가 있는 나라는 잘 시간이네요- 이미 주무시고 계실듯 한데."
"...!"
나는 순간적으로 이 소녀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사카는 그런 내 시선이 상관치 않은 듯.
"앗, 다 왔다. 이제 내려요, 눈바씨."
라고 하며 - 내 몸을 일으켜세웠다.
두둥!
이라는 느낌으로, 나와 아사카는 폼나게 백화점의 문을 열어젖혔다.
갑자기 왠 백화점이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그 시점에서 이미 패자.
남자라면 백화점! 여자라면 더더욱 백화점!
..이 아니라, 아사카가 말하는 '목적지' 가 바로 이 백화점이라고 해서이다.
이왕 온 김에 한번 옷 쇼팡이라도 해볼까?
"안되요, 눈바씨. 지금 갈길이 급해요."
"..그러니까, 내 생각을 읽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며 아사카에 의해 엘리베이터 쪽으로 끌려간 나는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 사정에 의하여 엘리베이터 작동을 중지합니다)
그렇게 써져 있는 종이가 붙혀진 엘리베이터에는, 점검 중이라는 표시만 떠 있었다.
"...대체, 몇층까지 가야 하는 건데?"
"아아, 아마도 5층일 걸요-" 라고 말하는 아사카.
"대체 무슨 일이길래 손님을 내보내고, 엘리베이터를 멈추어버린건데? 무슨 살인사건이라도 벌어졌.."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잠시 멍하니 쳐다보았다.
"...사인은.. 총탄에 의한 사망.."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수 있었다.
'그'가 죽어있는 모습을.
"..역시 끔찍하네요, 살인현장은요."
아사카가 침을 삼키며 작게 말한다.
"...아아, 분명 사람이 죽으니까.."
사건 현장 주위에는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고.
이미 수많은 경찰과 과학수사대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체 백화점 내에서 총격사건이라니.. 어떤 자가 그런 대담한 짓을 하는거지..?"
"총이라는 거, 분명 발사할 때 엄청나게 큰소리 나지 않나요?"
"그래, 그런데 이런 곳에서 총격이라니.. 상식상으로 이해가 안된다고."
"분명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을 텐데.."
"그래, 분명히 목격자가 수십명은 넘을 거야."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아사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그래서 결국 나를 왜 데려온 건데?"
"..."
아사카는 누군가를 찾는듯, 내 말을 신경쓰지 않고 시야를 이리저리 돌렸다.
"...이렇게 대담한 범행을 해버렸으니 용의자는 간추려 졌겠지, 그렇다면.."
이렇게 작게 중얼거리던 나를, 어떤 사람이 잘라먹었다.
"범인이 이미 잡혔다는 것이겠지."
내가 고개를 돌려서 본 것은 -
강렬한 눈매를 소유하고 있는, 어떤 형사였다.
"..당신은.."
"..아아, 내 소개를 까먹었군."
남자는 주머니에서 경찰수첩을 꺼내들며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강력수사대의 블랙메탈이다, 그쪽은.. 분명 눈바래기 변호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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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허억.."
땅바닥에 주저앉은 그가 피를 토하며 고통스러워 했다.
"..그래, 이 많은 군중들 앞에서 죽는 기분도 새롭겠지."
그에게 이미 한발을 먹인 '누군가' 는 - 분노어린 실소를 짓고 있었다.
"..크억.. 아.. 아팟.."
"아아, 정말 바보같단 말이지."
"..으윽.."
"내가 괴도백조에 대한 것에 대해 함부로 떠벌이는 놈을 그냥 내버려둘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크하악.."
쓰러진 자를 바보같다는 듯이 쳐다보던 '누군가' 는, 권총에 나머지 한발을 더 장전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배신자에게는, 뼈까지 파고드는 총알이 박히게 된다고."
탕 ㅡ
그리고 백화점 내의 시간은, 마치 멈춘듯 조용했다.